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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一同行 열네번째 -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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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如一同行 열네번째 - 논산

#!!#

화창한 날씨다. 화창한 날씨에 찾아보고 싶은 보물은 논산 관촉사의 은진 미륵이다.

이는 국보로 지정된 오래전 책으로도 배웠던 불상이다. 이번 여행은 충청지방의 큰 석불 들이다. 논산 공주에는 나란히 보물로 지정되었던 석불상이 있다. 이곳에 자리한 석불들을 뵈러 길을 나선다. 

 

△ 개태사 전경


논산으로 향하는 길옆에는 개태사가 있다. 태조 왕건은 936년 태조 19년 황산 (현 논산시 현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통일의 대업을 이루고이를 부처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이라 여겨 황산을 천호산(天護山)으로 개명하고개태사을 창건하였다. 


개태사지의 폐허가 된 절터는 개태사에서 동북으로 300m에 떨어진 마을 안에 고려 태조의 진영을 모셨던 진영의 건물지로진전 건물에 대한 기록은 고려 초기에는 나오지 않고 말기에 나오고 있어 이 건물은 아래쪽 개태사 건물보다 늦은 시기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진전 자리의 서쪽에서는 호암미술관 소장의 금동대탑(국보 제213)이 출토되었고진전 남쪽에서는 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형 반자(飯子)가 발견되었다.

그 남쪽 길가에는 담장에 걸쳐 개태사지석조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75) 2기가 지하에 묻혀 있다. 그리고 현재의 개태사에 서 있는 개태사지오층석탑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74)은 진전자리 서쪽의 축대 부근에서 옮겨간 것이라고 마을주민들이 증언하고 있다.

이로 보아 초기의 개태사 경역은 지금보다 북쪽까지 확대되어 있었던 듯하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개태사지(開泰寺址))] 

그리고 지금의 개태사는 현재 사찰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보물 제 219호 개태사 석불 입상인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김광영 스님이 새로 건물들을 지어 도광사라 하였다가 다시 개태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사찰 앞의 주차장에서 사찰을 바라보면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다소곶이 자리하고 있다.

 

 

△ 개운교와 천운지

 

△ 신종루


개운교를 통해 천운지를 양옆으로 보며 건너면 범종루와 사천왕문을 겸한 신종루를 지나 사찰의 마당으로 향한다.

 

△ 개태사 오층석탑

 

 절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이 탑은 옛 터 개태사지 북쪽 건물터에 남아 있었는데절을 새로 지을 때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1층 탑몸 아랫부분과 5층 지붕돌 윗부분이 사라져아랫부분인 기단부와 윗부분인 보주 등을 복원하였다. 옮길 당시 아랫부분이 일부 없어져 완전한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높직한 바닥 돌 위로 기단(基壇)이 없어진 채, 5층의 탑신(塔身)만이 차례로 쌓여 있다.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에는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비록 일부가 없어져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나조각 기법이 소박하고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탑으로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 어진전

 

△ 어진전 내부 태조 왕건 어진


개태사는 개경과의 거리가 멀어 왕실의 관심이 멀어지고우왕때 외구의 침범과 조선의 억불 숭유 정책으로 폐허가 된 것을, 2008년 조계종 호국사찰 개태사로 일신한다.

2013년 55일 어진전을 신축완 공하여 태조 왕건을 모시고 오늘에 이른다. 개태사는 태조 왕건의 어진이 봉안 되어 있어 진전(眞殿)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왕건의 옷 한 벌과 옥대가 보관되어 있었으며 국가 대사가 있을 때 마다 어진에 나아가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공민왕은 강화도로 천도하려고 개태사에 사람을 보내어 가부의 점을 쳤다는 기록도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미의 재발견 -불교조각-)


△ 극락대보전사진

 


△ 석조여래 삼존 입상사진


이곳의 극락대보전에는 보물 제 219호인 논산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모셔져 있다이 삼존석불은 태조에 의해 개태사가 설립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본존불

 

 중앙의 본존불은 민머리에 얼굴이 둥글지만 평면적이고 귀는 길게 늘어졌다. 어깨와 가슴은 투박하게 만들었으며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왼손은 배에 대어 무엇을 잡은 것처럼 만들었는데 지나치게 둔중하다.

신체가 원동형으로 처리되어 신체의 굴곡이 들나지 않는다.  

정수리가 큼직하며얼굴은 둥근 역삼각형이나,큰 눈에 비해 코와 입은 작은 편이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손 모양은 중생을 보호하여 모든 두려움을 물리 쳐준다는 시무외인 (施無畏印)이다.


 

△ 사진왼쪽(우측협시보살), 오른쪽(좌측협시보살)


 좌우 협시보살은 본존불과 같은 수법이나 어깨와 가슴 등은 좀 더 부드럽게 표현 되어 있다천의 자락도 형식적이지만 뚜렷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단정하면서 통통한 몸집큼직한 두 손과 부피감 있는 팔다소 두꺼워진 옷자락 등 전반적으로 조각의 선이 굵고 강하여 후삼국을 통일한 초기의 굳건한 기상이 드러나 있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불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왼쪽의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없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본존불보다 조각이 화려하고 섬세한 편으로어깨와 가슴이 좀 더 부드럽고팔찌와 천의(天衣)자락에 장식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보살상은 왼쪽의 보살상과 거의 같은 수법으로 얼굴이 역사다리꼴이고목에는 두터운 삼도(三道)가 있다. 단정하면서도 통통한 몸집큼직한 두 손과 부피감 있는 팔다소 두꺼워진 천의와 선으로 새긴 옷주름 등은 통일신라보다 진전된 고려 초기의 새로운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만든 작품이며고려 초기 지방 석불상으로는 우수한 작품에 속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 2018년 모습

 

△ 2018년 사진


 

△ 2021년 사진


이곳에서는 새로이 대웅전 중창불사를 하고 있다. 불사가 잘이루어지고 옛 명성에 걸맞는 사찰로 번창하고 잃어버린 문화재와 옛 개태사지를 포함한 역사속의 사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공사현장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개태사의 철확을 촬영 못하여 2018년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 개태사 철확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직경은 289cm, 둘레 910cm, 높이 96cm, 두게는 3cm이다. 조선시대 절이 없어지면서 벌판에 방치된 것을 가뭄때 솥을 다른 곳에 옮기면 비가 온다고 하여 여러곳으로 옮겼다가 일제시대 서울에서 박람회에 출품된후 새로 건립한 지금의 개태사에서 보관중이다.

 

 

△ 개태사지에서 발견된 금동대탑의 개태사 반환요구


관촉사의 은진 미륵으로 향하던 중의 방문이라, 개태사지 절터를 찾아보지 못한점과 철확을 먼발치서 보아야 한 아쉬운 점은 다음에 이 길을 지날때 중창된 대웅전과 함께 못가 본 사지를 찾아볼 것을 마음 에 새기며 관촉사로 향한다. 다음의 방문에는 국보도 볼 수 있고 보다 정비된 사찰로 발전 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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