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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一同行 마흔 일곱번째 -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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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如一同行 마흔 일곱번째 - 강릉

신복사지, 보현사

단풍이 곱게 온 산을 물들이는 계절이다. 오랜만에 고속도로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향한다. 얼마 전 새 식구를 맞은 동생의 집을 모친과 들려 보러 가는 길에 이곳의 보물을 찾아보려 한다. 강릉의 국보, 보물은 유적 건조물인 입영관 산문, 경포대, 오죽헌, 해운정 등 잘 알려진 건축물들이 있으며, 가장 최근인 2020년 12월 보물로 지정된 강릉향교 명륜당과 동무 서무, 전랑 등이 있어 둘러 보아도 좋으나, 사람들이 많이 찾아보지 못하는 보물을 보고 알리고 하는 마음으로 신복사지와 보현사을 찾아보기로 한다.

신복사지는 강릉 시청에서 남대천을 건너 얼마 멀지 않은 내곡동에 자리한다. 낮으막한 구릉에 자리한 신복사지에 좁은 길로 당도하면 그곳에서 잘 만들어진 너른 주차시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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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사지]

 

덩그란히 마주보며 불상이 쪼그리고 않아 탑을 지키고 있는 듯한 이곳의 환경은 오랜간 무슨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곳 신복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년)에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범일 국사는 신라의 선승(禪僧). 강릉 출신으로 성은 김씨, 품일(品日)이라고도 한다.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파(闍崛山派)의 개창조(開創祖)이다. 할아버지는 명주도독을 지낸 김술원(金述元)이며, 어머니는 문씨이다. 범일의 어머니 문씨가 규중처녀(閨中處女)로서 이른 새벽 해뜰무렵 굴산사지 터에 있는 석천(石泉)에 물을 길러 갔다가 목이 말라 해가 비친 석천의 물을 떠 먹었는데 곧 잉태하여 13개월만에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이에 집안에서는 불길한 징조라 하여 아이를 학바위 밑에 버렸는데 학(鶴)들이 이 아이를 품어 보존하였다.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범(梵)이라 하였다. 범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와 굴산사(掘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복사의 창건 이후의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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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제 84호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 좌상]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을 향하여 공양하고 있는 모습의 보살상을 표현하였는데, 왼쪽 다리를 세우고 오른쪽 다리를 꿇어 앉은 자세를 하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원통형의 높다란 관(冠)을 쓰고, 그 위에 팔각형 덮개가 올려져 있다. 이 덮개는 불상이 눈이나 비를 맞지 않게 보호하는 천개로 보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얼굴은 풍만한 데다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어 복스럽게 보인다. 관 밑으로 드러난 머리카락은 어깨너머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양 어깨에서부터 걸쳐 내져진 옷자락은 몸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보살상의 사실성을 더해준다. 팔찌, 목걸이, 옷 주름은 굵은 띠처럼 묘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둥글고 둔중한 조각수법을 보인다. 이러한 자세나 조각 솜씨는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국보) 앞의 공양보살상과 유사한 것으로 같은 지방 계열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원통모양의 높은 관, 둥글둥글한 얼굴, 짧은 인중, 미소 띤 입과 같은 표현은 고려전기 강릉 인근지역에서 유행하던 양식으로 근처에 있는 한송사지 석조보살 좌상 (국보제 124호) 그리고 월정사 석조보살 좌상(국보 제 48-2호)에도 나타난다.

 

보살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윗면을 둥글게 하여 보살이 들어앉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바깥쪽에는 큼직큼직하게 2겹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규칙적인 간격의 옷주름과 단순해진 장신구, 대좌의 조각수법 등에서 화려한 신라적 요소가 사라지고 고려 초기의 둔화된 표현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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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87호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신복사의 옛 터에 남아있는 탑이다.

 

이 탑은 2층의 기단(基壇)을 쌓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것으로, 각 부분의 모습들이 특이하다. 바닥돌의 윗면에는 연꽃이 엎드려 있는 듯한 모양의 조각을 하여 둘렀고,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안상(眼象)을 3개씩 새겨 넣었다. 탑신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얹어 놓았다. 탑신에는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데, 1층의 몸돌에 이를 안치하는 방인 감실(龕室)모양의 조각이 있다. 1층의 몸돌에 비해 2·3층은 갑자기 그 크기가 줄어들어 매우 얇다. 지붕돌 역시 얇아서 귀퉁이끝은 치켜올림이 희미하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3단이다.

 

꼭대기에는 드물게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있는데, 각 부분의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

 

탑의 기단과 몸돌의 각 층 밑에는 널돌로 괴임을 넣었는데, 이러한 양식은 고려시대에 자주 보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또한 아래층 기단에 안상이 새겨진 것이나,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3단으로 되어있는 점도 고려 전기의 석탑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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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

 

강릉의 성산면 보현산에 자리한 보현사로 향한다. 네비게이션으로 인하여 어렵지 않게 찾아 갈수 있지만, 이전은 가는 길을 찾기가 만만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전에 방문 시 이곳저곳 공사가 한창이었고 주차장에서 보던 사찰의 높은 축대가 인상적이었는데, 당시는 만나고자 하는 낭원대사비를 오르는 길이 다듬어지지 않아 많이 힘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잘 정비는되었는지 궁금하다. 보광리 입구에서 굽이굽이 시골길인 좁은 길을 가노라면 보현사가 나타난다. 길옆을 따라 파인 계곡엔 바위와 어울리는 낙엽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가을을 알리며 물과의 대화를 나누는 풍경으로 보여진다.

 

보현사는 650년(진덕여왕 4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되어. 889년(진선여왕 3년) 낭원대사(朗圓大師)에 의해 지장선원(地藏禪院)이란 이름으로 크게 중창되며, 제대로 된 사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창하게 된다. 낭원대사(朗圓大師)는 사굴산문의 개산조(開山祖)이신 범일국사(梵日國師)의 법맥을 이은 큰 스님이다. 범일국사가 889년에 입적하자 부도와 비석을 세우고 민규알찬의 지원 아래 보현사에 주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현사의 창건에는 선덕여왕 창건설 외에도 보현보살 창건설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져 옵니다.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돌배를 타고 천축국(天竺國)으로부터 강릉시 동남쪽 남항진 해변에 당도하여 문수사(文殊寺)를 세웠으며, 이 절이 지금의 한송사라는 설입니다. 어느 날 보현보살은 “한 절에 두 보살이 함께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내가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을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며 시위를 당겼습니다. 그 화살이 떨어진 곳이 바로 이 보현사 터라는 설화입니다.

국보와 보물을 배출한 한송사지가 더욱 궁금해진다. 이 곳서 출토된 국보 한송사지 석조보살 좌상은 춘천국립박물관에 두상 부분이 없는 보물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오죽헌 시립박물관에 있다. 다음에는 한송사지의 모든 것을 둘러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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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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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 석조아미타 삼존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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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문화재로는 940년에 세워진 낭원대사탑(보물 제191호), 낭원대사탑비(보물 제192호), 보현사 십육나한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1호), 목조보살좌상(보현보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3호)와 보현사 대웅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조선 후기), 대웅보전 안에는 석조아미타삼존불상(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7호)이 봉안되어 있고, 1822년(도광 2년) 영산회상도 후불탱화와 1799년(가경 4년 기미) 지장시왕탱화, 그리고 나한전에는 1851년(함풍 원년)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화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3점 모두 1988년과 1991년에 도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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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 낭원대사 탑비]

 

보현사에 남아 있는 낭원대사(834∼930)의 탑비로, 대사의 출생에서부터 경애왕이 대사의 덕을 기려 국사로 예우한 사실 및 입적하기까지의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대사가 96세로 입적하자 왕은 ‘낭원’이라는 시호와 '오진’이라는 탑이름을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용의 머리를 갖춘 거북받침돌은 등에 6각의 벌집 모양이 채워져 있고, 중앙에는 구름무늬로 장식한 높은 비좌(碑座:비를 꽂아두는 부분)가 마련되어 있다.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새기고 그 위로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의 용을 힘차게 조각해 놓았다. 꼭대기에는 석탑에서처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과 1단의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을 갖추고, 화염에 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고 있어 특이한 모습이다.

 

대사가 입적한 지 10년 뒤인 고려 태조 23년(940) 세워진 비로,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최언위가 짓고, 서예가인 구족달(仇足達)이 글씨를 썼다. 이 탑비는 보현사 담장을 끼고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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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원대사 탑가는길]

 

낭원대사의 탑을 보기 위해서는 300미터 정도 뒷산으로 올라야 한다. 이전에 힘들게 오르던 기억이 있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그래도 사찰로부터 입구에 데크길이 있어, 혹 하는 마음에 산을 오른다. 중간쯤 부터는 다시금 낙엽이 깊은 가파른 길을 걷게 된다. 중간 중간 계단이 보이나 낙엽에 묻히고, 마침 앞서 걷는 템플스테이하는 일행을 뒤쫓는 것을 위안 삼아 산을 오른다. 주의의 나무는 가을을 타서 보기 좋으나, 가파른 산에 사람의 발길과 물흐름으로 인한 골이 패인 곳에 만들어진 계단 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낙엽으로 인하여 걸음이 어려워 무척이나 힘든 등정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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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낭원대사 탑]

 

보현사에 자리하고 있는 낭원대사의 사리탑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무너져있던 것을 사찰 입구에 복원해 두었다가, 1991년 다시 원래의 자리인 산꼭대기 주변으로 옮겼다. 탑신(塔身)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세 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가운데 받침돌이 없어져 아래 받침돌 위에 바로 윗 받침돌이 얹혀있다. 탑신의 몸돌 한쪽 면에는 문 모양과 자물쇠 모양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두터운 편이며, 경사가 급하고,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얹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낭원대사탑비가 고려 태조 23년(940)에 건립되었으므로, 이 탑도 이 때 같이 세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길을 되돌아 내려오기가 만만치 않다. 미끄럽기까지 하여 조심하느라 주변의 단풍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찰에 다다르니 그래도 다녀온 것이 마음 놓이고 든든함을 느끼며, 오늘도 무언가를 해낸 듯 한 뿌듯함은 무었일까? 강릉을 왔으면 속초나 설악동을 찾아보고 이름난 명승지를 다녀와야 하는데, 늘 그러하듯이 이름난 명승지나 유적은 한번으로 만족하고, 숨어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꼭 다시 찾아가 보려 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글로 남기기 위함일까? 새로운 여행 길을 정리하며 대부분은 다녀왔던 곳이다. 이미 많은 곳을 다녀왔고 또한 많은 곳을 보아왔다고 생각한다. 글을 위해서면 지금껏 다녀온 것만 가지고도 일상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먼길을 와서 경포대 한번 못 들르고 바닷가 한번 나가보지 않고, 먼 길 돌아 집으로 귀가하는 나의 여행 습관을 본인도 의문 점을 갖고 귀가하며 웃음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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