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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一同行 백 마흔 네번째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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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如一同行 백 마흔 네번째 - 서울

- 세종대왕기념관

 

 한국을 찾은 누님 내외 분의 하루 일정에 동행하고자 서울의 성북동으로 향한다. 경복궁을 지나 성북동으로 넘어가서 잠시 와룡공원을 찾아간다. 성벽을 따라 걷는 등산객 사이에서  조선왕조의 도읍지인 한성부에 축조된 한양도성을 보게 된다. 1396년 (태조5년)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네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평균 높이 5~8m 길이 18.6km이라고 한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고 한다. 2014년 전체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 되고, 숙정문, 광화문, 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고 하니, 성벽 일주와 모든 성문을  보고 싶어지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안내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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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 10호  한양도성] 

 

길을 돌아 내려와 성북동의 명소인 길상사를 찾아본다. 사찰 위 편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내려 오면 삼각산 길상사의 일주문에 도착한다. 원래 이 곳은 대원각이란 고급 요정이었다고 한다. 문화재라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방문을 미루어 오던 곳이 었는데, 이 곳 성북동은 정법사에 다니시던 할머니로 인해 더러 방문하던 곳이라 이 곳을 스쳐 지나 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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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1997년 개원한 길상사의 개원에 관하여는 여러 일화가 있으며, 근대의 종교계의 성인이신 무소유의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의 염원이 깃든 곳으로, 사찰의 창건에 관여된 스님과 개원시 축사를 하신 김수환 추기경으로 인하여 종교 화합의 장을 이루어 낸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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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사찰 정면에 자리한 극락전이다. 길상사는 무소유의 범정스님과 무소유에 감동된 김영한의 인연으로 탄생한 사찰로 10여년의 권고와 거절의 시간 속에 법정이 뜻을 받아 드려 생겨난 사찰로, 이곳의 진영각에는 법정스님의 유골이 모셔진 장소가 있으며, 이곳은 서울에 자리하지만 법정스님과의 인연으로  승보사찰 송광사의 말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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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화 사당]

 

1000억원 가치의 재산을 희사한 길상화 (김영한)은 1999년 길상헌에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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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헌]

 

지금은 스님의 숙소로 쓰이는 듯 하다. 계곡에 자리한 별채 정자 건물로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의 한옥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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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 보살상과 7층석탑]

 

관음 보살상은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교수가 조각한 것으로 두 종교간의 화합을 염원하며 기증한 것으로, 마치 마리아 상이 연상되는 보살상이다. 

7층 석탑이 설법전 옆에 자리하는데, 기독교 신자인 영안그룹 백성학 회장이 가평에 있던 9층 석탑을 성북성당, 덕수교회와 함께 종교간의 교류를 위해 무상으로 기증한 것을 탑신부 2개층을 낮추어  7층 석탑으로 세운 것이다,  조선 중기작으로  추정되며, 7층 탑구조에 사사자가 탑신을 받친 구조가 독특한 탑으로, 2012년 기단부에 오장경, 금강저, 오불, 108향 염주, 다라니등을 봉안하고, 이후 시절 인연으로 미얀마의 제 1보궁 우뚜리와 완사큰스님이 600년전  탑에서 출토한 부처님 오색정골사리, 구강사리, 응혈사리와 제자인 마하가섭존자, 라훌라 존다 등의 사리를 2013년 탑신주에 봉안 탑이라 한다. 보수 과정에 옛날의 탑에서 봉안된 사리와 사리함, 불교 장식, 서적을  발굴 하는 것만 알아 온 내게, 이곳은  새로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의미를 달리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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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법번]

 

소강당으로도 이용되는 곳이라 한다. 건물 살에  자리한 보상상이 눈길을 사로 잡으며, 현대 개원을 대표하는 사찰 이미지에 맞게 신선한 감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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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사찰을 둘러보고 공덕주의 발언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사찰을 나와 다음의 목적지인 제기동에 도착하여, 일 보시는 동안 홍릉의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찾아든다.

전통혼례 식장을 찾아 바삐 혼례식을 준비하는 사람 들 사이로 보물을 찾아 본다. 기념관 옆에는 수표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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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  838 호 서울 청계천 수표]

 

수표는 물의 높이를 재는 장치로 이르는데, 기록으로는 처음은 나무로 만들어 세종 23년 청계천에 설치되고, 성종때 동국여지승람에 돌로 만든 수표에 척촌의 숫자를 새겼다고 되어 있는데, 이 수표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수표교 위쪽 가운데 속에 있다가, 청계천 복개시 장충단 공원으로 , 1973년 이곳으로 옯겨 왔다고 한다.

커다란 받침에 육각기둥으로 연꽃모양의 덮개를 가지고, 기둥은 위로 가늘어지고,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긴면이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하여 설치된다. 기둥에는 10자까지 눈금을 파고, 앞 뒷면에 숫자를 새겨 놓고, 눈금 간격은 주척 1자로 평균 21.5cm라 한다. 또한 3자 6자 9자 위치는 둥근 구명을 파서 높이를 쉽게 알아보게 하고, 기둥하단과  받침돌에 청계천 준설해인 계사경준과 기사대준이 새겨져 있다. 

앞으로 들어서면 구 영릉의 석물들이 줄지어 서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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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영릉 석물]

 

영릉은 세종대왕과 왕비 소현왕후를 모신 왕릉으로 처음에는 서초구의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의 서쪽에  자리하다가, 길지가 아니라는 논의로  예종 원년에 현재 영릉이 있는 여주로 옮기게 되는 데, 이 당시 능을 치장하던 석물을 옮기기 어려워 땅에 묻었고, 이를 1970년대에 발굴하여 석양 석마 망주석, 장명등, 석인상, 혼유석, 세종대왕 신도비 등 석물을 1974년 이곳 세종대왕 기념사업회로  옮겨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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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무인석과 석양]

  

왕릉에 설치 되었던 석물 하나 하나가 그 시대의 조각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랜시간 땅에 묻혀 있어  손상이 없지는 않으나, 크기나 모양이 세종대왕의 권위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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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 1805호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

 

세종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542년 (문종 2년)에 세운 비로, 부식으로 인해 비문을 알아 보기 힘드나, 비문을 지은 정인지와 글씨를 쓴 이용의 이름은 확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수는  두마리의 용조각이 있으며, 세종대왕의 능을 이전시 석물과 같이 묻히는 데, 숙종때와 영조때 노출되나 다시 묻기로 하여 묻힌 상태로 존재하다가, 1974년 옛 영릉터의 발굴당시 대리석인 비신과 이수를 발견한다. 비석의 받침돌은 찾지 못하여, 1999년 받침돌을 세로이 제작하여서 비신과 받침돌의 색상이 맞지 않으며 왠지 받침돌의 거북이 작아 보이는 느낌이다.

 

이곳 세종대왕 기념관 앞 마당에서는 전통혼례가 진행되고 있어 잠시 구경하는 기회를 갖는다. 갑작스러운 서울 방문으로 새로이 역사를 만들 가는 길상사와 땅속에 자리하다 모습을 드러낸 세종대왕 관련 석물을 접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수표를 보며 우리 역사 속에 사용된 자연 현상 측정 장치도 관심을 갖게 된다. 서울 속의 많은 보물을 좀 더 많이 찾아보아야 겠다는 마음을 갖으며, 요즘의 나와 가장 와 닿는 법정스님의 글귀 하나를 새겨보며 집으로 향하다.

 

『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사람을 대신해서 살아줄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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