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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一同行 백 쉰 네번째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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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如一同行 백 쉰 네번째 - 서울

허리에 문제가 있어 한동안 활동이 힘들었는데, 오늘은 여행의 정리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것을 찾아 올려 본다. 너무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경복궁을 찾아본 일을 정리 못하다가 지금 소개하고저 한다. 원래의 이번 여행 목적은 청와대와 그 곳에 있는 석불상을  찾아보려 하였는데, 가는 길에 내린 전철역에서 경복궁을 들어가게 되어 광화문의 뒤로 들어서게 된다. 추운 날에도 한복을 차려 입고 이곳을 찾은 외국인 들이 함께 한다. 경복궁은  태조 4년(1395)에 천도후 처음 세운 궁궐로, 정도전이  큰 복을 빈다는 의미로  ‘경복(景福)’이라는 글자로 이름지었다 전한다. 임진왜란(1592)에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우나,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경복궁은 빈 궁궐이 되고, 일제시대를 지나며, 궁궐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제수각·함화당·집경당·향원정·집옥재·협길당 등이 남아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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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뒷편]

 

경복궁의 입장권을 구하고 안으로의 진입을 우선하다 보니 복원 된 경복궁과 월대의 모습은 다음 기회로 하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흥례문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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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례문]

 

 흥례문은 경복궁의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의 중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목조 건물로, 1395년(태조 4)에 창건되어 1426년(세종 8년)에 집현전에서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으로 이름을 불리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867년(고종 4년) 경복궁 중건시, 청 고종 건륭제의 휘 홍력(弘曆)을 피하여 지금의 이름인 흥례문으로 되었다 한다. 1916년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흥례문을 비롯한 주변 행각이 모두 파괴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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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의 영제교 옆에 자리한 메롱해치]

 

 금천의 축대 4방향으로  4마리의 서수상이 있는데, 그중 유일하게 혀를 내밀고 메롱하고 있는 익살스러운  메롱해치가 있다. 금천교는 금천을 건너기 위해 세운 돌 다리이며, 영제교는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 위치한다.  세종 때에는 영제교(永濟橋)’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은 폐허가 되었고, 영제교는 돌로 만들어져 큰 훼손 없이 270여 년 간 방치되었다가 1865년(고종 2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궁궐의 금천교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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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812호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

 

금정전을 들어가는 근정문을 향한다.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맘이 산만하여서 인지 정신줄을 놓고 보물을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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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812호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

 

 1985년 보물로 지정 된 근정문은 경복궁 중심 건물인 근정전의 남문으로 좌우에 행각이 둘러싸고 있다.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세울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리고,  지금 건물은 고종 4년(1867)에 새로 만든 것이라 한다. 근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며, 공포는 다포식으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건축법이라 한다.

행각은 근정전의 둘레를 직사각형으로 둘러 감싸고 있는데, 양식과 구조는 간결하고 옆문에는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으며, 북측으로는 사정문(思政門), 동·서쪽으로는 밖으로 돌출한 융문루(隆文樓)·융무루(隆武樓)가 있다. 벽에 만든 창의 형태는 사각형의 모서리를 사선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남문 중 유일하게 2층 건물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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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23호 경복궁 근정전]

 

1985년 국보로 지정된 경복궁 근정전은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곳이라 한다. 많은 방문객 때문인지, 맘이 딴 곳에 있어선지 그냥 훑어보게 된다. 너무도 많은 문화재가 자리하여 세심하게 보다 보면 청와대 방문에 문제가 있을 까 걱정되고하여 먼발치서 눈에 담고 다음을 기약한다.  태조 4년(1395)에 지었으며, 정종과 세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는데,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 하면 잘 다스려 진다'는 의미로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앞면 5칸·옆면 5칸 크기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이다. 건물의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기둥에 12지 신상 등 동물상 들을 조각해 놓았으나 이의 관람도 다음으로 넘긴다. 건물 내부는  아래·위가 트인 통층에 가운데에 어좌가 있고,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도’병풍을 놓았고, 위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몄다. 근정전 마당에는 길 좌우에는 문무백관들의 품계석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행각이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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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23호 경복궁 근정전 옆면]

 

발길을 옮기다 웅장한 근정전 옆 모습을 대한다. 이곳에서  사정문을 들어서면 사정전이 나온다.  경복궁은 궁궐건축 제도인 전조후침 및 삼문삼조의 기본배치 원리에 따라, 외조, 치조, 연조의 구역으로 크게 나뉘어 지며 각기 제 기능에 따른 전각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예비답사의 마음으로 궁궐의 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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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1759호 경복궁 사정전]

 

근정전 뒤의 사정전은 왕이 평상 시 거처하며 정사를 보살 피던 곳으로, ‘사정’은 ‘선정을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작명하였으며, 만춘전, 천추전과 더불어 편전으로서 정사를 보았던 곳으로, 사정전은 태조 4년(1395)에 지어지고, 명종 8년(1553)에 불탄 뒤 재건 하나, 임진왜란때에 소실 되어, 현재의 건물은 고종 4년(1867)에 중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어칸을 협칸보다 2배 가까운 길이로 넓게 잡았고, 측면에서도 중앙칸을 훨씬 크게 한 것이 특징이며, 기단은 장대석 3벌대 기단이고, 어칸에 소맷돌이 있는 계단이 있고, 원형 초석이다. 가구는 2고주 7량가의 다포식으로, 공포는 4면 모두 어칸에만 2개의 간포를 배설하고, 협칸, 퇴칸은 1개를 설치되어 있다. 포작은 운궁초각으로, 천정은 우물천정에 단청문양이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에는 양성을 하고 취두·용두·잡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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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고]

 

사정문 그 좌우에는 서쪽부터 천자문의 글자 순서를 따라 천자고~월자고까지 행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궁중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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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사정전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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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춘전과 천추전

 

사정전의 동측에 만춘전과 서측에 천추전이 있다. 사정전에는 온돌이 없고 만춘전과 천추전에는 온돌이 있어 추운 겨울에는 만춘전과 천추전에서 정사를 보고 경연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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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845호 앙부일구]

 

사정전 앞에 놓인 앙부일구는 세종대왕이 해가 뜰 때 사용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며, 비가 올 때는 사용이 가능 하지 않아 물시계도 만들게 된다고 한다. 원본은 고궁박물관에 있으며,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가마솥 같이 오목하고, 이 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특히 세종실록에 글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 그림으로 그려서 시간을 알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것은 대궐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종로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시계라고 한다. 앙부일구의 세로선은 시각을 나타내고, 앙부일구의 가로선은 절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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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문]

 

강령전으로 들어가는 문인 강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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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년전]

 

경복궁의 건물로, 임금의 정식 침전이다. 1394년(태조 3년)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져, 세종 15년 수리, 명종 8년에 화재로 사라진 뒤 재건되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에 다시 지었는데, 고종 13년에 다시 화재를 입은 것을 고종 25년에 재건하였는데,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을 재건할 때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전 건물을 자재로 쓰기 위해 해체 이전 지금은 희정당이 된다. 이후 빈 터로 80년 가까이 남아있다가 199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정면 11칸, 측면 5칸의 1층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장대석의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에 이익공 공포 양식이며, 툇마루 부분은 긴 돌 기둥을 세워 마치 누각처럼 보이며, 가운데엔 넓은 월대가 있다. 가운데 3칸을 대청으로 놓고 좌, 우 양 옆에 9칸의 온돌방이 있으며, 건물 4면의 가장자리 칸들은 툇마루로 구성하여,  툇마루는 밖으로 출입할 수 있고, 툇간과 대청 사이의 출입문은 위로 올릴 수 있는 분합문으로 개방 또는 분리 가능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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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전과 연생전]

 

강녕전 동, 서에 위치한 보조 침전으로 강녕전과 복도로 통했기 때문에, 경성전은 동북쪽 가장자리 면에, 서북쪽 가장자리 면에 창이 아닌 문이 달려있다. 두 건물은 형태, 건물의 특성이 똑같다. 정면 7칸, 측면 4칸이며, 각각 가퇴가 있었으나 자료가 없어 복원 하지 못하였다 한다.  정면 가장자리와 대청 북쪽의 툇간을 제외한 나머지 가장자리 칸은 전부 방이다. 북쪽으로 방이 7칸, 남쪽으로 5칸이 있고, 그 중 한 칸은 북쪽 방과 남쪽 방 사이에 있다. 대청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총 4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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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당]

 

강녕전의 부속 건물로  조선 전기에는 없었고, 고종 때 새로 지었다고 한다. 경성전, 연생전보다 약간 격이 낮은 보조 침전이나 접견소로 알려지다, 《경복궁중건일기》를 통해 왕의 식사를 데워 수라상에 올려 들이던 중간 부엌으로 확인된다. 대칭으로 응지당과 연길당은 거의 같고, 정면 4칸, 측면 3칸, 총 12칸, 동쪽 2칸은 대청, 서쪽 2칸은 온돌방이다. 차이는 강녕전과 복도로 이어지는 문의 위치가  응지당은 동남쪽 측면에, 연길당은 서남쪽 측면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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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으로 가는 입구]

 

강녕전에서 교태전으로 들어가는 양의문 양 옆에는 강녕전 굴뚝이 있다. 밝은 황토색 전돌로 구성되어, 앞면에 만수무강(萬壽無彊), 천세만세(天世萬歲)라는 한자로 상감처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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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

 

경복궁의 강녕전을 왕의 침전,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라고들 하는데, 이는 세종때에 이르러 건립 되었다고 한다. 교태전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270여 년방치되다가, 1867년(고종 4) 8월 18일에는 지어져, 다음 해에 왕실이 이어 지고서 교태전이 중궁의 거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873년(고종 10) 12월 순회당의 화재 시 교태전이 소실 되어, 왕실은 창덕궁으로 이어하고, 1875년 5월에 복구를 시작하는데, 교태전 전후의 건물이 붙어 있고 회랑이 연결되어 화재에 취약하여 구조를 변경하며, 1876년(고종 13) 3월에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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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811호 경복궁 아미산 굴뚝]

 

경복궁 아미산 굴뚝은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한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고종 3년(1866) 경복궁을 다시 지을때 만든 것이라 한다. 굴뚝은 4개이며,  6각형의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는,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을 표현한 것이라 본다. 굴뚝의 위 부분은 목조건물의 지붕형태이며, 위에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이 설치되어 있다. 

 
경복궁 내전을 나온다.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어 새로이 지어지고, 이러한 일에 일본이 여러번 관여 되고, 그 들이 우리 역사 속에 남긴 상처들을 둘러보며, 상처를 받아 힘이 빠진다. 자세한 탐방이 아닌 둘러보기로 한 것에 위안을 삼으며, 다른 보물들을 찾아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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