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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一同行 백 쉰 다섯번째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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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如一同行 백 쉰 다섯번째 - 서울

- 경복궁 2

경복궁의 경전과 내전을 거쳐 담밖으로 나선다. 담장을 장식하는 문양을 바라보며 넋을 빼앗기다가, 차가운 날씨에 정신 차려 후원으로 향한다. 

 

20231201_122809 - 복사본.jpg[담장]

 

발길은 북쪽으로 연뭇 위의 섬 속에 자리한 향원정을 찾아 나선다.

 

20231201_123253.jpg[보물 제 1761호 경복궁 향원정]

 

2012년 보물로 지정된 향원정은 북쪽 후원의 향원지 연못의  육각형의 정자이다. 이 곳에는 원래 세조 2년에 취로정(翠露亭)이란 정자를 지었다는 것이 「세조실록」에 있다 하는데, 연못의 크기는 4,605㎡, 모서리가 둥근 방형의 연지로, 수원(水源)은 북쪽 언덕에서 솟아나는 '열상진원(洌上眞源)'이라는 샘물이라 한다. '취향교'는 6·25전쟁 없어지나, 1953년에 향원정 남쪽에 석교로 사용되다가, 2012년에  발굴조사를 거쳐 향원정 북측의 제 위치에 원 모습인 목교로(길이 32m,폭 165cm)로  복원 하였다고 한다. 향원정은 고종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으로 부터 정치적 자립의 일환으로 1873년 건청궁을 지으면서, 그 건청궁 앞에 연못을 파고, 가운데 섬을 만들고 세운 2층 정자로 1885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향원정의 평면은 정육각형으로 아래·위층이 똑같은 크기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일층과 이층을 관통하는 육모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공포는 이층 기둥 위에 있으며, 일층 평면은 평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이층 바닥 주위로는 계자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모든 칸에는 완자 살창틀을 달았다고 한다.
처마는 겹처마에 육모지붕이며, 중앙의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중심점에 절병통(節甁桶)이 있다.


20231201_123545.jpg[ 향원정]

 

연못을 한바퀴 돌아보고 건천궁으로 다시 와서 내부를 둘러본다. 건청궁(乾淸宮)은 1873년 역대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 등을 보관 할 목적으로 지어졌으며,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이 있기까지 고종과 명성황후의 거처로 사용 되었다 한다. 을미사변 이듬해인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 후, 일제는 1909년 건청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을 지었고, 해방 후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에 철거된다. 2007년 10월 18일 일제가 철거한 건청궁이 복원된다. 

 

20231201_131638.jpg[건천궁의 장안당]

 

건청궁은 창덕궁 연경당 및 낙선재와 더불어 일반 사대부의 저택과 유사하게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된 건축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장안당(長安堂)은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27칸, 측면 3칸, 7량의 건물이다. 장안당에는 북행각과 동행각이 딸려 있는데 북행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가 발전기를 설치해 한국 최초로 전깃불을 밝힌 곳으로 유명하다. 을미사변 당시, 고종은 이 곳에 감금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20231201_131827.jpg[곤녕합, 옥호루]

 

왕비의 처소 인 이 곳은 1895년(고종 32)에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 된 곤녕합 옥호루(玉壺樓)이다. 이 장소에서 처참한 일이 일어 났음을 알게 되어 마음이 무겁워 이내  자리를 벗어난다.

발길을 경회루를 향해본다.

 

20231201_125205.jpg[국보 224 호 경복궁 경회루]

 

1985.01.국보로 지정된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워진 건물로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 한다. 연못에는 얼음이 얼어 있어 경회루가 얼음판에 반영을 만들고 있다.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왕자의 난으로 경복궁에  있기를 거부하여 창덕궁을 다시 지은 조선 태종이 경복궁을 법궁으로 여기며,  천민 출신인 박자청에 지시하여 연못을 넓히면서 다시 지었다는데, 연못을 팔때 나온 흙은 교태전 뒤의 뒷동산을 만드는데 사용 하였다고 한다. 이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어 있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에, 팔작지붕이며, 공포는 누각건물의 간결한 형태이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2층 바닥은 마루를 깔고,  마루의 높이를 3단으로 각각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고 한다.

 

20231201_125006.jpg[ 경회루의 기단부와 다리]

 

1층 기둥이 전부 화강암이며, 2층은 외부와 통한 외진과 내부 공간인 내진, 그리고  중심에 중궁 부분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각 공간 사이마다 문이 있고, 문을 전부 들어올려 한 공간이 된다. 경회루의 바깥 돌기둥은 네모나고 안쪽 돌기둥은 둥근데, 이는 땅은 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圜地方) 사상을 나타내고, 전체 기둥은 총 48개로 바깥 24개, 안쪽 기둥이 24개인데, 이는 24개절과 24방을 의미한다고 한다 고 한다.

 

20231201_125428.jpg[국보 경복궁 경회루]

 

멀리 경회루의 옆면에 호수로 이어진 계단이 보인다. 이 곳 연못에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하여 청동 용 2마리를 넣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1997년 연못 공사를 위해 연못의 물을 뺐을 때 하향정 근처에서 1마리가 발견되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었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20231201_130030.jpg[하향정]

 

하향정은 이승만 대통령이 여가와 휴식을 위해 1959년 지어졌다고 하는데, 경복궁의 원형 보존은 1869년 고종때를 기점으로 해야하여 철거해야 한다는 지적과  이미 50년이 지나고,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으며, 경회루 미관을 해치지 않으니 보전하자는 논란이 있었던 건물이다. 적적한 담장 한켠에 광복 후 우리의 손으로 지어진 새 건물이라는 것도 역사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31201_125500ihioo.jpg[보물 제 846호 경복궁 풍기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재는데 사용되던 깃발을 꽂는 대이다. 화강암 의대를 놓고, 구름무늬를 새긴 8각기둥을 세운 모습으로, 크기는 아랫단의 높이가 80.8㎝, 위 8각 기둥의 높이가 143.5㎝로 전체 높이가 224.3㎝라 하며, 기둥의 맨 위의 중앙에는 깃대를 꽂는 구멍이 있고,  기둥옆으로 물이 고이지 않게 배수구멍이 있다고 한다. 꽂는 깃대 길이는 알 수 없고, 깃대 끝에 긴 깃발을 매어 날리는 방향으로 풍향을 재고 나부끼는 정도로 바람의 세기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풍기대는 18세기 것으로 여겨기며, 궁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림인 동궐도(東闕圖, 고려대학교박물관소장)에도 풍기대 위에 길게 나부끼는 풍기가 그려져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02. 꼭대기 중앙에 있는 구멍에 풍기죽을 꽂고, 풍향을 측정했던 풍기대(보물 제846호 창경궁 풍기대) ©문화재청 03. 화강석 풍기대 그림이 있는 국보 제249호 <동궐도(東闕圖)> ©문화재청

 

현재는 창경궁(昌慶宮) 풍기대와 경복궁(景福宮, 224.3㎝) 풍기대가 남아 있다. 시간을 측정하는 앙부일구, 비의 양을 재는 측우기, 이전에 본 하천의 물의 높이를 재는 수표, 그리고 오늘 풍기대를 접하며, 당시 자연의 현상에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기구의 개발노력에 놀라게 된다. 

  

20231201_132356.jpg[신무문]

 

 경복궁의 북문인 심무문을 통해 청와대로 향한다. 하루에 둘러 보기엔 몸도 힘들고 맘도 힘든 곳이 이 곳 경복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문화와 정통성에 일본의 만행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는 생각에 울화가 치민 하루이다. 서서이 잊어 가는 불행한 과거에 대한 망각 속에 잘 복원 된 건물만 보게 되는 현실과 한복을 입고 곳곳에 자리한 중국인 관광객이 오가는 경복궁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문화 숨결을 순간 순간 단절 하게 만든 현장, 국모를 암살한 장소,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들의 총독부 건물이 존재하던 곳을 복원 하였는데, 이 곳은 궁궐이기도 하지만, 각 건물이 왜 새로이 지어지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만행이 있었는지,  후세에  알려주는, 지난 역사를 알리는 장소로도 거듭 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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