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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一同行 서른 여섯번째 -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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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如一同行 서른 여섯번째 - 봉화

경북 봉화로 여행지를 정한다. 춘양목과 송이로 유명한 고장이고,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청량산 , 산타마을 등 봉화 다움의 볼거리가 풍부한 문화관광의 고장이다. 이번 여행은 몰야면에 위치한 국보와 보물을 찾아 길을 나선다. 한여름이지만 흐린 날씨에 봉화에 도착한다. 문화유적을 찾아 접하려는 나에게 또 하나의 과제가 여러 누정을 찾아 보는 것이기에 500년역사가 남아있는 한옥마을인 한과로 유명한  닭실 마을에 도착하여  청암정으로 바로 향한다. 


 

 

△ 충재와 청암정

 


 

코로나로 인한 정자의 출입이 통제 되어, 앞을 서성이며, 청암정 정자앞의 충재 툇마루에 앉아 정자를 올려보는 것으로 방문의 목적을 다한다.

 

 

 

△ 청암정

 


여름 햇볕아래의 갇혀 있는 정자를 바라 보면서, 둘레는 담으로 둘러 샇인 공간에 갇히어 존재하는 정자가 답답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모름지기 정자는 접근도 쉽고, 열린 공간에 자연과 접함에 있어 탁 트여 세상의 이치를 보아온 곳이 아닌가 싶은데, 갑자기 막힌 듯하여 코로나가 운치있는 정자를 속박하는 것 같아 부아가 난다. 다음에 저 청암정 마루에 올라 세상사를 내려다 보리라 마음 먹으며, 닭실 마을도 그때 다시 보면 된다는 생각에 단풍드는 가을을 기약하며 닭실마을을 스치듯 눈에 담고 길을 나선다.  


 

△ 국보 마애여래좌상

 


멀지 않은 곳에 처음 접하는 국보와 보물을 찾아 나선다. 국보 제201호 봉화 복지리 마애여래좌상이다. 얼마전부터 우리는 문화재에 호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문화재청만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구별하는 명칭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는데 , 먼저 그 문화재가 존재하는 시나 군의 지명 그리고 리의 표기에 문화제의 구분이 가능한 명칭을 붙여 정한다. 그것이 사찰에 존재한다면 그소재지 리 대신에 사찰의 이름을 사용한다. 이번에 찾아보는 국보, 봉화 북지리 마야여래좌상은 지금은 지림사 라 불리는 사찰의 경내에 존재하지만 명칭이 봉화 지림사 마애여래좌상이 아닌 것은 지림사가 국보로 지정된 1980년이후 불사를 크게 했을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 마애여래좌상

 


지림사 경내의 마애여래좌상은 화려한 단청의 누각같은 터진 시설안에 보전되어 있다. 그동안 보아 온 석조불은그 자체로 보전 되는 것그리고 지붕이 딸린 보호각을 만드는 방법그리고 철제 프레임에 투명 프라스틱 덮게를 얹은 형태 등으로 보존하는 것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하는 방법 등나름 원형을 유지 보전하려 애쓰는 흔적이 보인다. 


 

 

△ 석불전

 


이번의 마애석불은 나름의 보전을 위한 노력은 인정되나, 마애불의 특징을 살리기에는 너무도 협소한 곳에 갇힌 듯한 느낌이다 . 건물로 둘러진 대부분의 마애불이 그러하듯, 자연과 어울리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보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 사찰의 넓은 앞마당과는 대조적으로 한귀퉁이 좌그마하게 지어져 보존되는 것이 왠지 마음 한구석을 답답하게 한다. 이곳 뿐 아닌 많은 곳의 문화재가 자연 친화적으로 그모습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 지림사전경과 왼족긑의 석불전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 마애여래 좌상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 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대웅전의 뒷편에는 또다른 마애불 상이 조각되어 있다.


 

 

△ 대웅전 뒤의 또다른 마애불상 군

 


 앞으로 지림사의 일원으로 잘 보전되리라 생각하며 사찰을 벗어난다.


 

 

△ 축서사

 


뭔가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축서사로 향한다. 이곳의 보물은 명칭이 봉화 축서사 비로자나불 좌상 및 목조광배 이다. 지림사에서 출발 문수산 계곡을 따라 오르면 오복하게 자리한 정상 가까운 곳인 축서사에 당도하게 된다. 축서사라는 이름도 생소한 사찰을 찾아 오르고, 맞이하게 된 축서사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사찰앞까지 차로 오르면 새로이 잘 지어진 큰 사찰을 맞이하게 된다축서사는 조계종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며 673(문무왕 13) 의상이 창건하였다 한다. 조선 말기에 일본군이 의병 토벌을 목적으로 불태워 대웅전 1동만 남겼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동안 폐사로 있다가 1996년부터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1999년에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보광전·적묵당·보물각·응향각·보탑성전·심검당·선열당·안양원·범종각·법성료 등이 있다

 

 

△ 축서사

 

 

이곳에 새로 조성된 탑과 오래전 지어진 보광전과 조화릅게 절을 중흥 하였으며, 뒤편에는 새로이 조성한 석조삼존불도 경이롭게 자리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을 보며 예전에 큰 도량임을 알 수있게 해준다.

 

 

 

△ 보광전과 석등 

 

 

지금은 조선 중기로 추정되는 보광전에 모셔진 석불상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보광전 앞의 석등은 지금도 그 자태를 잘 유지 하고 있다. 보물 제 995호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는 보광전에 모셔져 있는데 정문을 바로 하고 모셔지지 않고 오른 쪽 옆문에서 정면으로 보셔져 있다. 내력을 알수는 없으나 보광전의 왼쪽이 벽으로 막혀 있어 이를 등지고 모셔져 있다. 

적묵당 뒷편으로 낮은 언덕에 이 불상이 방치되어 있었다 한다. 노천에 존재하여 마멸이 진행되어 세부표현이 뚜렷하지 않다. 머리는 근래에 새로 만들어 올려놓은 것으로 불신만 오랜세월 견디어 온 것이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

 


 

 

불상의 높이는 1.08m이며, 얼굴은 가는 눈, 꼭 다문 입, 반듯하고 넓은 신체에서 고요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주름이 평행 계단식으로 표현되어 다소 형식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릎 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주름은 다른 불상들의 U자형과는 달리 물결무늬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평행 계단식 옷주름과 함께 9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대좌(臺座)는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8각으로 상··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다. 하대에는 각 면에 사자 1구씩을 새겼고, 중대에는 손을 모으고 있는 인물상을, 상대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현재 불상 뒤에 나무로 만들어진 광배(光背)가 있는데 여기에는 화려한 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원래의 돌로 만든 광배는 윗부분만 남아있다.

 

 

 

 

△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에 많이 만들어졌던 비로자나불상 가운데 하나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과 동일한 특징을 보여주어 당시 조각수법과 신앙형태를 알 수 있다. 석탑기에 의해 9세기 후반에 만들었다는 절대연대가 밝혀져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새롭게 번창하는 사찰들을 보면 무언가 모를 뿌듯함과 풍요를 느끼게 된다. 사찰은 시대에 맞게 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 한다. 그 또한 새로운 문화의 창조이기도 하다. 오램과 새로움의 조화를 꾀하며 공존하는 것이 또 다른 멋스러움이라 생각 한다. 축서사에서 느낌은 온전한 옛건물에 안취된 불상을 대하며, 그것이 당시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왠지 본인의 자리에 앉아 계신다는 느낌이었으나. 지림사의 국보 마애불은 마치 너른 집안의 곳간에 갇혀있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문화재가 갇혀 있는 것이 아닌 본래의 자리와 모습을 잘 간직하게 본연의 느낌을 갖을 수 있게 보전관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까 하는 혼자 만의 기우로 여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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